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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선교와 복지, 그 상관성과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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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0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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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선교정책세미나

주제강연 2. 장애인 선교와 복지, 그 상관성과 문제점
맹용길 교수(장신대학 기독교윤리학과, 한국기독교학회장)

Ⅰ.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장애인 선교와 복지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히며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지적함으로써 미래 선교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일어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시정함으로써 더 좋은 선교와 복지를 추구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필자의 한계 때문에 제한된 생각을 정리하게 됨을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장애인 복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을 하고 전문적인 훈련을 하는 기관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선교와 연계하여 생각하는 기관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것은 사회복지를 훈련시키는 기관들이 - 어떤 경우는 기독교 기관들도 있지만 - 사회복지 자체에 대한 전문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위한 전문가들을 육성하려고 하면서도 선교와는 관련을 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회피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사회복지 훈련 전문 기관이 선교를 위한 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선교를 전문으로 훈련하는 기관은 처음부터 사회복지의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 즉 사회복지는 복음과 무관하다고 까지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것이 주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기관에서 사회복지를 언급할 경우나 훈련 프로그램을 두려고 할 경우 그것을 우리가 왜 해야 하느냐는 태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회복지와 선교를 연결하여 교회의 기능인 봉사의 기능을 하려고 하는 훈련 기관이 필요한데도 거의 없다. 우선 신학적으로 선교와 복지를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며 복지사업이 선교의 한 면이라는 것, 즉 선교 자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며 복지가 장애인들에게 복음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장애인 선교와 복지의 상관성과 문제점들을 짚어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모두가 귀를 기울여 협력하고 선교의 정책을 복지의 차원에서 정립하는 계기가 되고 동기가 되게 하였으면 한다.

Ⅱ. 장애인 선교
1. 장애인과 복지
장애인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기능적인 장애를 가지고 생활을 하는데 제약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UN은 장애인의 상태를 결함(impairment), 무능력(disability), 불리 (handicap) 등으로 표현하고 그러한 상태를 문제의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 장애인 복지는 이러한 문제의 상태를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 즉 삶이 가능한 상태로 전환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을 재활(rehabilitation), 정상화(normalization), 사회통합 (social integration) 등으로 부르고 있다. 즉 장애인 복지는 이러한 활동을 의미한다.1)

우리 나라에서 장애인을 분류할 경우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 정서적·사회적 장애, 언어적 장애 등으로 나누며, 그것들이 합하여 중복장애를 갖는 경우도 있다.2) 이러한 전문적인 분류는 사회복지 전문분야에 넘긴다 하더라도 우리는 복지와 선교를 의식하는 가운데 장애인을 선천성과 후천성, 지체 장애와 정신 장애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나눈 것은 복지와 선교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장애인 복지는 장애인들이 가지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원해주고 충족시켜주고 대신해줌으로써 가진 문제로의 욕구를 해결하며 도와주는 것이며, 장애인이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며, 장애인이 되었을 때에 문제로써의 욕구가 일어나지 않게 하거나 감소되게 하는 것이지만 기본적인 욕구는 항상 가지게 되고, 그러한 욕구가 일어나게 됨으로써 기본적인 욕구 문제 해결을 위해 복지 사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개인적으로 발전하게 하고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나 기관들이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고 구조와 정책을 통해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인 복지는 결국 그들이 인간답게 살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며, 살맛이 난다는 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아무리 그들을 위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행복하게 느끼지 못하면 복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들의 복지를 생각한다면 실제로 서로 통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다. 사람답게 살게 한다는 의미에서 복지를 돕는 사람의 기준에 맞추려고 할 때 오히려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2. 장애인 선교란?

선교란 본래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작업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생명은 육신적인 생명도 있고, 영적인 생명도 있고, 정신적이고 혼적인 생명도 있고 사회적인 생명도 있다. 이것은, 구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선교적 차원에서 볼 때 영생을 포함하여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영원한 생명이 없이 우리의 궁극적인 생명을 논할 수 없다.

선교는 단순히 말씀을 전파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도와 구별되어야 한다. 전도는 도(道), 즉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의 기초 작업으로써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말씀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가르치고 양육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까지도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선교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통속적으로 또는 전통적으로 국내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전도라고 하고 이문화권(異文化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교는 통합적인 접근을 통해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생명을 얻은 자가 살아가는 데 관련된 모든 문제를 포함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선교는 우리의 삶 전체와 관련되며 교회의 포괄적인 일임을 밝혀준다고 하겠다.

장애인 선교는 장애인만을 선교의 대상으로 한다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장애인 선교는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기관, 조직 등 넓은 의미에서의 환경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인 선교는 단순히 복음을 전파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Ⅲ. 장애인 선교와 복지의 관계

1. 장애인의 복지 요구

지체장애인의 경우 그것을 회복하려고 해도 완전히 회복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언어장애인일 경우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정신장애인도 같은 맥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장애의 상태는 개인에 따라 각각 다르며 그 원인도 다양하며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상당수는 그 원인과 역사를 잘 모르고 부모들이 숨기기도 하고 자기 집에 오랫동안 거의 감금 상태에 있다가 내놓기도 하고 마치 장애인이 스스로 잘못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래도 장애인을 돌보다가 부모가 죽고 형제들이나 친지들이 맡게 되면 말할 수 없이 어려운 경지에 들어가기도 한다.

지체장애인들은 그 지체 장애의 정도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지만 정신장애인들은 자기들의 장애를 구분할 수도 없고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기준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정신 장애인들은 그 자체로서 행복을 느끼고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이 행복을 느끼는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측은히 여기고 밥을 먹을 때에도 얌전하게 먹으라는 식으로 규격을 지으며 옷을 입을 때에도 상당히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모두가 일률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장애인의 형편에 따라 그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잘 파악하고 현실성을 고려하여 가능한 범위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사고의 능력에 관한 한 선천적인 장애인도 정도에 따라 확실하게 분간하는 것이 어렵지만 현재 장애인의 경우도 어렵다. 후천적인 경우, 정신장애에서도 구분하기 어렵지만, 두 가지로 생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장애가 일어나기 이전의 개인을 보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그 후 일어난 장애를 장애로서 취급하여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선천적으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과 아주 어렸을 때는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어떤 사고나 사건에 의하여 장애인이 되었을 경우를 구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후자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고 그러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후천적인 경우 중도장애인을 포함하는데 실제로 장애인이 되기 이전의 삶의 경험과 감정이 어떻게 해소되느냐에 따라 장애의 복지를 추구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중도장애인이 장애 됨을 빨리 수용하고 거기서부터 자기의 복지를 위해 문제해결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파악하고 과정을 밟아가야 한다. 복지를 돕는 사람들은 바로 이것을 도와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장애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며 거기서부터 바로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2. 선교의 복지욕구 충족 가능성
장애인의 복지 욕구는 다양하기 때문에 선교로써 그것을 충족하는 것은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선교가 복지와 같은 맥락에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다른 것은 선교는 기독교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복지의 인프라가 선교 인프라라는 것이다. 선교 인프라를 이용하여 복지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복지 사업과 선교 사업이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선교의 목적과 복지의 목적이 다르게 판단되고 서로 다르다는 것만을 강조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프라는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이지만 방법들을 서로 공유할 수 있고 공동으로 접근함으로써 양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경우도 대단히 많이 있다.

우리는 선교와 복지가 서로 만족을 줄 수 있다는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복지 측면에서 선교를 보지 않고 선교 측면에서 복지를 보면서, 복지를 선교의 한 면으로 보고, 복지의 기술, 기법, 방법들을 선교가 수용하여 나누면서 복지가 복지로서 자기의 영역을 지키고 손상을 받지 않게 하며, 그것을 응용하거나 함께 힘을 합하고 노력하여 공유적 가치와 노력으로써 장애인 복지의 욕구를 충족하며 궁극적인 복지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보여주고 느끼게 하며 궁극적인 해결을 하게 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복지는 선교의 측면에서 보면 영생이고 영원한 나라, 즉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의 실재를 보여주며 자기의 소속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하고 복지의 궁극적인 의미를 파악하게 한다.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으로써 궁극적인 복지가 되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것을 확신하고 생활이 변화되게 하고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장애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게 한다. 물론 육체적 장애나 정신 장애를 극복하거나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것은 복지 사업과 전혀 상충되지 않고 그것을 도와주는 확실한 목적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다. 장애인이 이 세상에 살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고 보장받으며 영원한 나라에 속해 있음을 알게 한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장애를 넘어설 수 있는 훌륭한 길이다.

예수님은 장애인들의 복지를 충족시키는 일을 직접 하시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실 때에 그리고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에도 같은 행동을 하도록 명령하셨다. 예수님은 궁극적인 복지를 위해 말씀을 전파하고 세례를 주고 교육을 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동시에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쳐주셨고 그의 제자들에게도 같은 것을 하도록 명령하셨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제자들을 훈련시키기까지 하셨다.

예수님은 장애인들의 재활과 정상화를 위해 선교하셨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 15:29-31 )."

두 경우를 여기서 선별하여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나병 환자를 고치신 경우이고(마 8:1-4) 다른 하나는 맹인을 고치신 경우이다(요 9:1 이하).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고치시고 제사장에게 그의 몸을 보이게 하심으로써 재활과 정상화를 확실하게 보여주시고 사회통합이 가능함을 인정하게 하셨다. 또 맹인을 실로암 연못으로 보내어 씻고 다시 보게 하심으로써 재활과 정상화를 확실하게 보여주셨고 사회통합의 길을 트셨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님의 복지 행위는 환자를 중심으로 하는 복지를 가능하게 하는 선교를 하셨다. 즉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 행위 그 자체가 선교이며 동시에 복지 사업이다.

예수님은 선교를 통해 온전함의 의미를 새롭게 볼 수 있고 깨닫게 하셨다. 온전함은 개인적인 도덕성 또는 인격의 함양과 같은 수단을 통해 온전함을 추구하는 것도 의미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온전함을 함께 사는 것, 서로 나누면서 사는 것, 장애인을 치유하고 돕고 사는 것,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것 등을 모두 포괄하고 계신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온전하시니 너희도 온전하라는 명령으로 동일시하시는 데서 나타난다(마 5:43-48).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온전하심을 나타내시고, 그의 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내게 하시고, 그의 제자들에게 그것을 가능하게 도우셨으며, 오늘 우리에게도 그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성경은 이것을 여러 곳에서 밝혀주면서 그것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Ⅳ. 장애인 선교와 복지의 문제점들과 해결
장애인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보면서 마치 그들이 선교하는 사람보다 못하거나 불쌍한 사람들, 작은자들로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선교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빚진자들로 생각하고 그 빚을 갚는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고 영생을 예수님으로부터 얻은 자들로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전해야 하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장애인들이 있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이 할 일이 있지만 사실, 그들도 어딘가 한 곳은 장애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지금 우리의 형편에서 보면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나 예수님의 편에서 보면 장애로 인정될 수 있다. 그렇지만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양분함으로써 대상이 명확하여 좋기는 하지만 때때로 애매할 경우가 있음도 알아야 한다.

장애인 선교와 복지 사업을 하면서 장애인들을 이용하여 거짓된 일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즉 장애인들을 도우면서 거기에 관련된 서류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위조할 수도 있고 장애인들을 돕는다는 명목 아래 실제로 그만큼 돕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어떤 경우는 장애인들을 이용하여 자기 욕구를 충족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자기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하여 장애인들을 돕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자기 욕구 충족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선교는 전혀 아니며 복지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장애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복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애인들은 도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며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더 심한 사람들일 뿐임을 인식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장애인을 보면서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내가 이만큼 훌륭하고 큰 일을 한다고 하여 자기 욕구 해소를 하며 대외적으로 과시하며 위선까지 곁들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장애인을 돕는다는 구실 아래 자기의 이익을 채울 수도 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은 분명히 진실의 문제이다. 이미 왜곡된 복지사업과 선교에서 그것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병들고 있으며 사회를 어지럽게 하며 장애인의 사회 통합을 하는 데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 선교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으로써 예수님이 하신 것을 본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선교사요, 복지사업의 기반을 보여주시고 실천하신 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에게서 선교와 복지는 하나로 나타나고 있으며 복지가 선교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그것을 완성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사실, 복지 행위가 선교로 나타날 때 교회는 명실 공히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를 형성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초대 교회의 삶의 모습이었다. 물론 이것이 교회의 일차적인 업무는 아니다. 그렇다고 부차적인 업무도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에 동시에 전해져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Ⅴ. 장애인 선교와 복지의 미래
우리는 장애인 선교와 복지를 하나로 묶어 생각한다면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개인적 수준에서, 둘째는 교회적 수준에서, 셋째는 전문 훈련 기관, 즉 신학교와 같은 기관의 수준에서 고려할 수 있다.

1. 개인적 수준
개인은 선교의 소명을 받고 훈련을 받으며, 동시에 복지에서 필요한 기술, 기법, 방법들을 훈련받는다. 개인은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가정이나 관련된 기관이나 학교 같은 데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결국 미래를 향하여 나가며 고려해 볼 때, 우리에게 가장 긴요하게 요구되는 것이 복지이며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향해 가려고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공통분모로 작용하며 공동선으로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목표가 될 수 있으며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일치하다는 확신을 갖고 개인의 선교와 복지의 인프라로써 기본 또는 기초를 닦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준비라는 말로도 대치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준비가 아니고 대안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2. 교회적 수준
교회는 자체 성장과 안위를 추구하는 것도 비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가 교회 자체를 잘 꾸려나가는 것도 큰 복지 사업이며 선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교의 의미를 좀더 확대해 보고 복지와 연결시키며 장애인을 연계해 볼 때, 자체 안에서 머무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교리적 측면에서 교회는 하나요,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사도적이라는 표시를 주장하며 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앞으로는 방향을 달리하여 그러한 교회가 장애인을 향하여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더불어 살 수 있는 같은 수준의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임을 알게 하여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의 처지로 오신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섬김을 받으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려 오신 것처럼 개인보다 더 힘을 가진 교회가 주도적으로 선교와 복지를 연계하고 동시에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3. 전문 훈련 기관의 수준에서
신학교와 같은 전문 훈련 기관은 기본적으로 선교를 위한 신학을 교육하여야 하지만 동시에 선교를 위해 디아코니아의 영역을 소흘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실재로 보여주어야 한다. 신학교는 전공학과 또는 관련학과를 개설하고 교수를 확보하며, 이것을 요구하고 있는 학생들을 모집하여 교육하여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는 것도 좋으며, 선교 단체들과 연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리고 일반 학교에서 훈련을 받게 하는 것도 좋으며 학점 교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목사로서 또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이 방면에 지원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요구하는 현실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목회를 하는 가운데 복지 기술, 기법, 방법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며 신학의 실천을 위해 연계되어야 하며,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더욱 현실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필자는 실제로 작은 중증장애인 복지 시설에서 보고 얻은 경험을 머리에 두고 생각하고 배운 것이지만,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 즉 복지 대상자들의 개인적 원인, 상태, 미래 등을 생각하며 그들의 복지를 고려하여 복지라는 측면에서만 볼 때 국가나 돕는 사람들에게 손을 펴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면을 본다면 그러한 수준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선교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안전망 역할을 하여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뿐만 아니라 복음이 이 땅에서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새로운 면을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각 수준에서 선교와 복지를 연계하여 궁극적 복지를 얻는 데까지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게 느껴진다.

Ⅵ. 맺는 말
장애인들의 심정에서 선교와 복지를 생각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했다면 용서를 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작은 경험과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선교와 복지의 의미를 연계함으로써 복음을 더욱 현실성 있게 전파해야 할 뜻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처음에 밝힌 대로 필자의 한계성 때문에 단편적인 생각을 정리했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선교가 복지와 연계될 수 있으며 복지의 기술, 기법, 방법들이 선교의 한 면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1930년대의 신학 교육에서도 이행되었지만 오늘의 우리에게도 통합적인 교육이 요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장인협, 社會福祉學槪論,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3, 255-256 쪽.
2) 이계윤, 장애인 선교의 이론과 실제, 경기, 안양: 한국특수요육연구소 출판부,
1996, 15 쪽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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