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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애인 선교의 발자취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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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0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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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선교정책세미나

발제1 :   한국 장애인 선교의 발자취와 과제
            양동춘 목사(베데스다선교회 대표, (사)한국장애인선교회총연합회 이사장)

. 들어가는 말 : 민족을 구원한 그 시작의 자부심

1. 한국 선교, 장애인 선교로 시작하다
한국 장애인 선교는 침몰하고 있는 이 백성을 구원하는 데서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서 그 자부심을 찾는다. 특수교육 또는 장애인 선교의 시작을 로제타 홀 선교사의 평양에서의 맹인선교 또는 맹인교육에 기원을 두기 때문이다. 선교사가 선교목적으로 특수교육을 매개로 선교-장애인 선교-를 시작했다고 보아지기 때문이다.(베데스다선교회 회보, '더불어 사는 우리들', 93년 5월호)

한국 교회 장애인 선교는 한국 교회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장애인 선교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이며 의사인 홀(Rosetta S. Hall) 선교사가 의료수술, 직업교육의 기회로 평양에 맹학교를 설립함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홀 선교사는 안식년 귀국 때 뉴욕 맹학교를 시찰한 후 한국에 돌아와서 맹인들에게 한국말 초보와 십계명을 가르쳤다. 이러한 한국장애인 선교는 미국 선교사에 의한 맹선교로 시작되었으며 그 접근방식이나 주요내용은 장애로 인한 결핍을 해결하려는 의료시술, 직업교육 등으로 이루어졌다.

2. 평양 남문밖교회 교인들의 불평과 장애인 선교의 침묵시기
그러나 장애인 선교가 교회 선교로 정착한 것은 해방이후의 시기로 보아야 한다. 1936년 봄 평양 남문밖교회 이창호 목사가 점자와 안마술 위주의 맹인교육을 위해 교회 전도실을 사용했으나 교인들의 불평으로 그해 서문밖 마포삼열 기념관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후에는 기숙사도 갖추고 체계 잡힌 맹아(盲:맹인, 聾:농아)학교(맹 30명, 농 50면)로 발전했으나 여기서 남문밖교인들의 불평은 오늘까지 이르는 장애인 선교에 대한 성도들의 의식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 이후 장애인 선교는 특수교육으로 넘어갔으며 한국 교회는 전반적으로 '장애인 선교의 침묵시기'를 가지게 되었다.

3. 농, 맹 교회를 주로 한 장애인 선교
맹인교회는 맹인 오현상 전도사에 의해 1930년 봄 승동교회에서 시작되어 지금의 남산맹인교회(원로 강용준 목사)의 전신이 되었으며 전국 16개의 맹교회로 맹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농아인교회는 1946년 10월 박윤삼 목사의 개척으로 오늘의 영락농아인교회가 그 효시가 되었다. 지금은 전국에 있는 순복음에바다교회 산하 전국 35개 교회를 비롯하여 장로교회 31개 교회 등 전국 79개 교회가 이 일을 맡고 있다.

4. 장애인 선교 단체 출현
1970년대에 들어서서는 종래의 농, 맹선교로 대표되는 한국장애인 선교가 장애인 선교 단체 창립으로 복지프로그램 선교와 지체장애인교회 개척, 그리고 개(지역)교회의 장애인 프로그램으로 그 선교의 장이 넓혀졌다.
장애인 선교회 창립으로 그 동안 특정 장애인 선교에서 다양한 장애유형별 선교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불어 복지프로그램과 함께 장애인 선교는 더욱 구체화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Ⅱ. 베데스다선교회, 그 선교 시작의 의의
1. 베데스다선교회는 장애인 선교의 효시인가?
그렇다. 선교 시간적으로는 1976년 2월 창립한 베데스다선교회는 같은 해 7월 광주에서 창립한 광주실로암선교회보다, 3년 후에 창립한 한국밀알선교단으로 봐서도 그렇다. 선교회 중심의 장애인 선교의 초창기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선교단체의 창립일시는 아래와 같다.

-1976년 2월 28일 베데스다선교회(대표 양동춘 목사)
-1976년 7월 15일 광주실로암선교회(초대단장 변귀숙)
-1979년 10월 16일 한국밀알선교단(초대단장 이재서)
-1981년 2월 15일 신망애선교회(대표 김양원 목사)

2. 장애인 선교란 자각
(1) 기독교 또는 기독교인의 대사회적 봉사
시작은 베데스다선교회가 먼저 시작했어도 장애인 선교의 자각이란 면에서는 이의를 달 수 있다. 베데스다 그 선교시작의 배경은 '교회의 대사회적 봉사'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자기 비대화와 교회 밖의 교회운동이 그것이다. 70년 경제부흥과 함께 한국 교회는 그 규모에서 커지기 시작하여 세계 교회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급성장을 자랑하게 되었다.

지구역사에서 공룡의 출현과 그 소멸의 비밀은 그 비대화에 있었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체중감량에 실패하면 공룡처럼 자취를 감추고 말 것이다. 한국 교회가 커지기는 하면서 물량적이고 외형적인 면에만 몰두하고 더욱이 개교회주의로 몰아가는 현실은 더 이상 교회에 소망이 없는 듯 했다.

(2) 인식의 대전환으로써의 사회운동
여기에 베데스다선교회는 소외자선교로, 불우이웃돕기의 구체적 실천으로 주1회 사회복지 시설을 사랑으로 방문하는, 소박하게 1시간 선교의 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장애 용어조차 병신, 불구자 등으로 쓰이는 시기였다.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이르러, 특별히 1981년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자의 해를 맞으면서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고 장애자란 말이 자주 쓰이면서 '장애자 선교'란 용어로 선교 사명을 확인하게 되었다. 더욱이 80년대 말에는 장애자 인식의 대전환의 시기로 확정하고 장애자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며 한 목소리를 내므로 장애자복지법개정과 장애인고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장애인'이란 용어를 가지면서 명실공히 '장애인 선교'가 그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3) 무엇보다 개인적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써의 선교
그러나 무엇보다 개인적 부르심을 간과할 수 없다. 장애의 흔적을 움켜잡고 고민하던 이들을 주님께서 구체적으로 선교의 장으로 초청하셨다. 개인적 몸의 장애가 어떻게 주님의 선교적 도구가 될 수 있는가를 망설이던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의 빚을 갚으라고 말씀하신다. 더 고통받는 이웃(장애우)의 아픔의 소리를 듣게 하시고 모세처럼 그 곳으로 보내셨다. 그 선교의 내용은 내면세계의 깊은 상처가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됨과 함께 선교적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들이 영혼구원과 사회봉사를 겸한 선교현장을 가지기 시작했다.

Ⅲ. 베데스다, 그 의미로 장애인 선교 신학모색
장애인 선교의 현장성은 부득이하게 한국 교회의 신학적 도그마인 보수, 진보의 선을 무리없이 넘나들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그 통합의 한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아직도 단어사용의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① 장애와 비장애의 통합
② 복지적 접근과 영혼구원의 과제
③ 양분된 한국 교회의 통합 등의 과제를 자연스럽게 안게 되었다.
그러므로 베데스다 연못(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양의 문 곁에 있는 연못이름으로 여기서 베데스다선교회의 이름이 기원됨)을 그 히브리 이름의 뜻인 '자비의 집'을 재해석하여 우리 동양문화권에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 용어임을 감안하여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구원의 은혜'라면 그 신앙적 응답이요, 실천적 삶은 당연한 것으로 '친절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태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여기서 '은혜'는 보수로 대변되고 전도, 구원, 기도원운동으로도 불려질 수 있겠다. 더불어 친절은 진보요, 운동이요, 인권으로 불려질 수 있으며, 장애인 선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둘을 통합하는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신학임을 천명한다.

다시 말해서 대사회적 봉사로 장애인 선교가 시작되었을지라도, 그 본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의 응답으로 전도의 영혼구원의 사명에 그 근원을 두는 것이다. 여기서 74년 로잔에서 열린 세계교회 선교대회의 천명은 교회의 임무(MISSION)를 '전도와 봉사'로 보았으며, 대사회적 봉사를 등한시한 것을 회개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하심으로 볼 수 있다.

솔직하게 보수, 진보의 논쟁으로 밤을 지새운다면 우리 주님께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장애인 한 형제라도 욕창의 고통에서, 육체와 영혼의 신음의 자리에서 치유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야 마땅할 것이다. 장애인 형제가 아파하는 육체의 가시(개인적 장애)가, 마라의 쓴 물(사회적 장애)을 지나 예수의 흔적(선교동역자)으로 고백케 함으로 새로운 천년의 시대는 장애인 선교 대통합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Ⅳ. 장애인선교연합, 장애인운동연합
장애인선교연합의 모색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시기가 되었다. 장애인(베데스다)선교 10년을 맞는 1986년은 내적으로 동질성의 친교와 정보의 교류, 하나님의 성결의 정화 등을 요망하던 차에 뜻 있는 장애인 선교단체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함께 "장애인고용'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한국장애자선교연합회가 1986년 9월 29일 창립하여 초대회장에 양동춘 목사를 선출했다. 이후 연합의 10년의 결정체로 문화관광부 산하 사단법인 한국장애인선교단체총연합회로 법인화(96.6.3)되어 99년 4월말 현재 전국 9개 지역연합회에 102개 회원단체가 소속되었다. 지난 98년 6월에는 시설신고제에 따른 사회복지법의 개정으로 가칭 민간시설연합회도 창립하는 모태가 되었다. 지난 13년 동안의 주요행사와 세미나 주제는 아래와 같다.

1. '88-89 주요행사
1) 장애자 문제 대사회 토론회(88. 6. 7. / 프레스센터)
가. 강사 : 손봉호 교수, 이철용 의원, 이성재 변호사, 김종인 교수
나. 토론회 후에는 서울시청 정문까지 가두시위와 함께 성명서를 발표
다. 성명서 전문을 한겨레신문 6월 9일자에 게재함
라. 성명서 내용 <제목> "장애자도 살고 싶습니다. 장애자도 살고 있습니다."

(1) 장애자의 정확한 범위설정과 통계조사 촉구
(2). 장애자 고용촉진법 조속한 입법촉구
(3) 장애자 복지기관 투명한 운영촉구
(4) 장애자 올림픽 전시위주의 행사지양촉구
(5) 장애자의 기본인권 보장촉구

2) 장애자 문제 대교회 토론회(88.12.8. / 남서울교회)
가. 발제1 : 장애인 선교의 당위성과 현황(양동춘 회장)
나. 발제2 : 장애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손봉호 교수)
다. 발제3 : 교회의 장애인 선교의 방향(박종삼 교수)
라. 발제4 : 교회 재정구조는 거듭나야 한다(전택무 명예총무)

3) 장애자 올림픽 선교대회

가. 잠실학생체육관(88.10.10.) 나. 충현교회(88.10.13.)
다. 올림픽선수촌 휴게실전도지원
라. 장애자올림픽 선교음악제(88.10.20. / 여의도 한강고수부지 노천극장)

4) 장애인연합 송년예배(88.12.27. / 극동방송국에서)
5) 장애인임의단체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89.6.19. / 프란체스코 피정의집)
가. 서울시로부터 프로젝트와 예산지원 받음
나. 연구위원선임 - 팀장 : 손봉호, 위원:김종인, 양동춘, 정형석, 나종천
다. 책임연구원 김종인 교수 연구논문발제
라. 연구논문자료집 발간

2. 주요세미나 주제모음
- 장애인 선교의 문제점(86.11.27.)
- 사회복지적 측면에서의 장애인 선교의 방향(87.2.9. / 조휘일 교수)
- 장애인법적 불평등(87.4.13.)
- 장애인 평등과 참여(87.5.18.)
- 교회와 장애인 선교(87.12.7. / 김경민 목사)
- 장애인 선교의 바람(88.2.1. / 손봉호 박사)
- 환희의 삶을 위하여(88.5.2. / 대구남산교회 / 김정권 교수)
- 장애인 선교신학모색(89.3.28.)
- 90년대를 향한 장애인복지와 교회의 과제(90.2.19-20.)
- 장애인복지를 위한 교회의 역할(90.3.25.)

--(생략)--

-장애인자녀교육(96.1.17-18. / 대구)
-장애아부모의 심리(95.7.4-5. / 광주)
-무허가 복지시설개선을 위한 공청회(95.11.30. / 3회 개최)

3. 사회문제 대연합
가.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와 연합(전문위원 또는 실행위원으로 활동했음)
나. 장애인문제 대책위원회와 연합(공·대·협에서 장·대·협으로, 공동대표 역임)
다.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98.12.3 설립)과 연합(한·장·선 이사단체로)
라. 장애인관련법 제정 또는 때마다 연대하여 운동함
마. 님비현상의 현장마다 함께 연대 또는 협력받음(밀알자페학교건립을 위한 시위)

Ⅴ. 베데스다선교회 23년 사역
(1) 사회복지시설 선교 : 주1회 한시간 선교로 지속
(2) 재가장애인 선교 : 나눔교회를 개척(89.6.18)하여 선교공동체를 지향
(3) 자원봉사자교육 : 크리스챤 자원봉사교실, 요육대학, 수화선교학교 등을 운영
(4) 복지, 교육 프로그램 : 장애아동 조기교실 및 장애인공동체 그룹홈 운영
(5) 보이지 않는 사역 : 교회 및 대사회 인식의 변화와 그 연대사업

Ⅵ. 장애인 선교의 2천년대의 과제
1. 법인화추세 및 문제점
(1) 전문복지화 : 객관적으로는 대사회적으로 크게 기여하게 함
(2) 선교자율화의 문제 : 선교방법(복지, 교육, 신학의 문제)이 목적이 될 위험이 내재
2. 효율적인 선교연합의 과제
(1) 개교회주의 영향 탈피 : 한국 교회의 역기능 현상들이 그대로 유입 및 묵과
(2) 독선주의 지양 : 장애인 선교의 '더불어, 함께'를 실천해야
(3) 신사적 연합 모색 : 긍정적인 지역연합 또는 지역분할(네비우스 정책)
이제는 좀 더 신사적일 이유도 있고 여유도 주셨다. 신자쟁탈전과 같은 비인격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은 신사협정을 통해 해결되야 한다고 본다. 한국초대교회 네비우스 선
교정책의 일부를 여기에 도입해 봄직하다. 적절히 선교지역을 분담하거나 한 지역의
여러 선교단체는 생산적이고 복음적인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로서 연합이 요청된다.

3. 장애인 선교의 모델링, 베데스다
(1) 장애인 선교의 분명한 정체성 확립/본래 사이비 척결, 중도변질 및 탈선, 도중하차
방지
(2) 지역 장애인 선교정책 수립(단독 또는 연합)
가. 지역연대 및 네트워킹(후원자, 교회, 복지관, 연관시설 또는 기관 등)
나. 지역장애인(노원구 98년 말 현재 7,462명 등록)과 협력, 후원 사업확대
다. 하나님의 영광, 장애인 선교 현장 만들기
라. 장애인 선교 훈련학교(능동적 선교동역자 양성)

4. 장애인 선교, 베데스다의 사역철학
1) 사명문구
(1) 창립부터 / 그늘진 지역에 그리스도의 소망의 빛을!
소외된 자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길을!
(2) 훈련받으며(바나바 및 GDEW)/
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 베데스다
나. 저주란 잘못된 장애의 틀(인식)을 축복의 틀(존재가치)로 바꾼다.
다. 장애인 속에 숨겨져 있는 애굽근성(거절과 폭군)으로부터 출애굽
라. 불신자에게는 전도를, 기존신자에게는 갱신운동을!
마. 하나님나라 건설의 선교동역자로 일하게 한다.
2) 사역철학
(1) 하나님나라의 구원받은 동역자 양성을 위한 양육을 개인적으로 실시한다.
(2) 그 어느 때보다 기도가 사역임을 알고 기도동역자를 많이 확보한다.
(3) 한 지역 인구의 10%라면 그 분깃이 마땅히 있어야 한다. 장애인의 당당한 분깃이
있음을 선포하며, 그 분깃을 차지하기 위해 짐노(천국)의 사역을 실시한다.
(4) 장애, 비장애의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며,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로 협력한다.
(5) 노원지역의 등록된 7,000 장애인을 그리스도의 왕국의 남은 그루터기로 중보한다.
(6) 그 시작은 기독론으로, 그 과정은 선교론으로, 그 결론은 교회론으로!
(7) 장애인 선교 그 파장은 연합(교회)과 통합(사회)으로!

Ⅶ. 나오는 말 / 여전히 열악한 장애인 선교 현실
23년 전보다 장애인 인식에 있어서나, 그 선교수준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서 괄목할 만큼 성장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장애인 선교 1세대로서의 진정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생존에 급급했던 시간이었던 것을 아쉬워하며 그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에 장애인 선교(장애인교회, 선교회, 지역교회 선교 등) 담당창구를 모두 합쳐서 300여 곳으로 보고 한국 교회를 아주 적게 잡아 3만 교회(4만이라고도 함)로 해도 그 수의 대비는 1%수준이다. 등록한 장애인 인구 수도 전체 인구의 1.25% 수준이다.(노원구의 경우는 98년 말 현재 전체 구민 595,851명 중 7,452명이 등록장애인임)

여전히 턱없는 수의 열세를 실감하며 현재의 1% 수준에서 당당히 10%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사명을 선교 2000년대의 과제로 넘긴다. 부디 준비된 좋은 사역자의 출현으로 장애인 선교의 밝은 전망을 기대해본다.

이제는 통합의 시기가 왔다. 온전히 전도와 봉사의 통합으로 가야 한다. 장애인 전도는 온전한 신앙고백과 그 영성으로 감당해야 하며, 장애인 봉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교회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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