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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명 그 이후 글 | 김한옥 목사 (세계밀알연합 이사장, 서울신대 교수) 해마다 입학 때면 신대원 지망생들에게 하는 공통적인 질문이 있다. “소명 받았습니 까?” 이 짧은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신대원에 들어 올 수 없다. 40여 년 전 나도 “예”라고 대답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다. 사실 나는 그 때 그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신학대학에 갈 무렵 많 은 부흥강사들은 꽤나 드라마틱하게 받은 소명을 간증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는 중 생 이후에 주의 종이 되라는 어떤 음성도 듣지 못했고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꾼 적도 없다. 그러니 소명에 대한 이 야기만 나오면 나는 늘 마음이 불편했다. 그게 지나칠 때면 ‘주님은 나를 부르지 않았는데 내가 좋다고 따라나선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내가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미국 드류(Drew)대학 교수인 토마스 오 덴(Thomas Oden)이 쓴 [목회신학]을 읽고 난 후였다. 이분은 목사의 소명은 내적증거와 외적증거를 통해 입증 되어야 하는데, 내적 증거는 목사의 기능을 수행할만한 자질을 말하고, 외적증거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공인 된 학교에서 신학교육을 받은 것으로 증명된다고 한다. 오덴은 내가 그렇게 부담스럽게 여겼던 소위 영적인 어 떤 증거들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받은 소명은 장기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얼마나 반가운 말인가? 소명에 관한 한 그의 말은 나에게 복음과 같았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목 사님이냐는 질문을 적어도 두 차례 이상 받았다. 그리고 20여 년 학교에서 가르쳐왔고, 비록 작은 교회이지만 십 년 이상 개교회에서 목회도 하였다. 이 정도면 소명에 대한 외적, 내적 증거가 충족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소명보다 소명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소명 이후에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정도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부르신 분께 누를 끼치지 않을 것이 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계속해서 버리는 일이다. 버리는 것이 습관이 될 정도로 말이다. 위로부터 특별한 부르 심을 받았으면 주님만 의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자꾸 버려야 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세상에서 요구하는 것을 많이 가질수록 세상을 이기는 줄 알았다.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데 이런 것 챙기고 저런 것 살피느라 많은 것을 잃었다. 둘 째는 성공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목사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유로 내가 잘되면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 뜻을 이루는 줄 착각하고 살았다. 내 성공이 곧 주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했으니 그 섬김과 희생이 얼마나 이기적이었 겠는가? 성공주의가 소명으로 둔갑하고 나니 내가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꿈을 이루어주시기 위해 매번 희생당해 주시길 기대한 것이다. 주님은 처음부터 내가 세운 성공의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당신의 부 르심에 온전히 순종하는 그것 하나 바로 알고 그렇게 살기를 기다리셨을 거라는 깨달음이 드니 송구스러운 마 음 말로 다할 수 없다. 셋째는 날마다 나 한 사람 주님 앞에 바로서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내가 신학생 시절 에 학교에 오는 채플 강사들 중에는 학생들을 향해 큰 비전을 품으라, 세계를 교구로 삼으라, 심지어 만 명 교회 를 꿈꾸라는 말들을 마치 복음인양 외쳐댔다. 지난 수 십 년을 거기에 속아서 살았다. 마치 소명을 받아 목사가 되면 그 직분에 버금가는 사람이 저절로 되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크고 작은 죄와 허물을 가지고 주님 앞에 엎드 려 우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돌이켜 보니 나 한 사람을 온전히 품는 일에서 날마다 싸워 이겨야 하는데 그걸 간 과한 것 같다. 큰 비전도, 세계도, 만 명의 교회도 먼저 나 한 사람을 품은 후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소명 받은 자로 사는 기본기를 겨우 알만하니 일터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참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 지만 앞으로는 지난날들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걸어본다. 2018·3,4_vol.21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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